「Chakuwikiの利用者」の版間の差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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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の利用者'''(チャクウィキのりようしゃ)とは、[[Chakuwiki]]を編集する人たちの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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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자실'''은 정부, 정당, 기업 등의 [[출입처]]가 기자들에게 마련해준 장소이다. 정부 부처 [[기자실]]은 출입기자제로 운영되어 [[출입기자단]]에 가입해야 기자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출입기자단 가입은 주로 신문사과 방송사에게만 허용되었다. 1990년대부터 인터넷 언론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기자실의 배타적, 폐쇄적인 운영이 비판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고 사실상 정부 부처 기자실은 폐지되었다.
  
== 概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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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과 출입기자제 ==
閲覧専門の利用者は含まれない。Chakuwikiの利用者には、数多くの個性的な利用者が存在する。また、管理者による投稿ブロックが最近、相次いでいるのも実情である。Chakuwikiに対して問題的な活動を行った利用者が、いる。実際には馬鹿所かきちがいの溜まり場と言った方が適切である。こういう悪管理者たち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殺す殺す殺す。私は今押さえ切れない程の殺意を覚えている。私が利用してきたサイトの中でも突出して下劣で柄の悪いのがCWであり私はまともなYPユーザーに出会い心から本当に嬉しく思っており(こんな嬉しい体験も初めてであった)ここを荒らす奴(CWユーザー)は例え冗談半分であったとしても絶対に許さないし、した所でここに載る事になるだろう(犯罪者と言うレッテルが貼られる)あっち(CW)では滅茶苦茶に罵倒し、ますます利用者が離れるという悪循環を分かっていない様だな。御前等(CWユーザー)も好い加減つまらないユーザー苛めは止めてもっとまともになれよ。と言ってもきちがいには通じないか。言っておくが一番手っ取り早いのは悪開発者・管理者・ユーザー皆ひっくるめて処分する事だ。よく覚えとけ。ちんけな罵倒主義者達(CWユーザー)。は正しいと思います。---[[利用者:D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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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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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와 경찰서에 설치된 기자실은 [[출입기자단]] 소속의 기자만 이용할 있는 출입기자제로 운영되었다. 출입기자단의 가입은 기자단 내부의 심사(또는 투표)로 정해졌다. 따라서 매체 수가 늘어난 1990년대부터 기자단과 기자실의 배타성 및 폐쇄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CWに嫌気がさしたまともなユーザーへ。一度でもCW*[[利用者:ゆーり|ゆー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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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利用者:D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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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의 역사는 [[1922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언론이 생긴 이후 언론인들이 [[무명회]], [[철필구락부]] 등 언론 단체들을 결성한 것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조선인과 일본인 기자들은 [[출입처]]별로 기자단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1922년]] [[3월 31일]]에 경제부 기자로 구성된 [[간친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체신국 출입기자와 체신국 관리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광화구락부]], [[이왕직]](李王職) 출입기자들이 만든 [[이화구락부]], 스포츠 기자들이 만든 [[운동기자구락부]], 연예부 기자들이 만든 [[찬영회]] 등이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출입처를 기반으로한 기자단은 일본의 [[기자클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일제시대에 태동한 기자단은 현재의 출입기자단의 모체가 되었다.<ref name="history">[http://www.kwanhun.com/book/bo_1_1.html?mode=view&tb=book4&idx=706&FYY=2001&FMM=%BF%A9%B8%A7&pg=1  출입기자단-기자실 제도의 형성과정과 현황] - 관훈저널</ref>
  
==Chakuwikiの管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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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전후에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결성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의 각 기관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조직하였다. [[1948년]] [[신익희]] 국회부의장은 [[대한민국 제헌국회|제헌국회]] 제18차 본회의를 시작하면서 국회기자단 결성을 보고하였다. 1950년대까지 언론 환경은 큰 변화가 없었다.
===[[谷口一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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総合管理人。開発者権限であるのにかかわらずあまり活動していない。それは文章能力自体の無い幼稚園児だから[http://piza2.2ch.net/ff/kako/1002/10026/1002613088.html これ]しか見ていないんじゃない?したがって幼稚園児のくせにオナニーしまくっており最悪の馬鹿な基地外。まともに話をしようとしても全くの無駄である。赤子言葉で話さないと通じない為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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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ったく、[[滋賀県|チンケな場所]][[Chakuwiki|サイト]]作りやがって。完全なオタクでキモさ全開な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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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カの壁」'''という本が大ヒットして調子に乗っている幼稚園児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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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ういう悪開発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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ガッシュと清麿は窮地に立たされていた。ガッシュ&清麿「私は皆(CWの被害者や追放者)の為に何も出来なかった。だからこそここで御前を倒し餞をしたいのである。」谷口一刀「けっ、何を偉そうにお前もやはりかすどもと同じレベルという事だ」ガッシュ&清麿「皆の事を悪く言うな!」谷口一刀「ふっ、御前如きに何が出来る」ガッシュ&清麿「ウオー(心の力が高まる)!」谷口一刀「何っ!まだそんな力が残っていやがったか!まあいいどっちみち死ぬ運命なのだからなー」ガッシュ&清麿「バオウ・ザケルガー!」谷口一刀「ジガディラこの項目にリストアップされ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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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언론 환경은 급변하게 되었다. [[4·19 혁명]] 이후 언론사가 난립하여 사이비 기자가 생기고 출입기자단의 부패가 불거져 나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였다. 군부는 언론을 부패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통제하려 하였다.<ref name="seong">성기철, 〈개방형 브리핑제가 취재 및 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1998년과 2003년 중앙일간지 청와대 발 1면 기사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2004</ref>
  
アカウン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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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는 [[1963년]] [[청와대]]에 기자실을 설치하고, 출입여부를 청와대가 승인하는 소위 ‘아그레망’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의적으로 출입 기자 수를 조정하여 쉽게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서 였다. 당시 기자실 이외에 취재 거리를 얻을 방법이 없던 기자들은 정부의 정책을 수용하였다. 이때부터 정부 기관 [[대변인]]의 발표를 기자단이 취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이 관행은 [[1967년]] 정부가 각 부처에 [[공보관]]를 공식적으로 두어 제도로서 정착하였다.
  
先日、CWユーザーであるおかやまりゅうせい氏(ブログでは「はげお」)が書いた[http://hagepower.net/mt/archives/cat4/cat20/ 基地外馬鹿丸出しのプレイ日記]の発見に成功した。[http://www14.plala.or.jp/rei_kamizuki/FF6/FF6.htm 偉大なるユアペディアンの同ゲームのプレイ日記を基にした小説]と比較してみ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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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들어서 박정희 정부는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1972년]]<ref>성완경은 1971년 12월 27일이라고 하였다.</ref> 초에 [[프레스카드 제도]]가 실시되어 행정 부처 출입 기자의 수가 32%나 줄었다. 당시 주간지나 월간지 기자에게는 프레스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기자실의 배타적, 폐쇄적 이용이 자리잡게 되었다.<ref name="history" /> 한편 정부는 [[1975년]] 부조리 일소를 명분으로 일부 중앙 관청과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하였다.<ref name="seong" />
*いかに基地外かよくわかりました。一刀=ケフカ説は一人で複数もつことも出来るが、複数で一つを管理することも可能である。したがって、ここにあげたアカウントの人数が実際の利用者の人数とイコールとは限らない。はっきり言ってウィキペディアの管理者より質は極めて低く比較対照にならぬほど下劣なサイト。当然の様にネットしか娯楽の無い根暗臆病者である馬鹿管理者、馬鹿ユーザーの溜まり場となってで嫌な思いをした人は今貴方が御覧になっているここ(YP)に来て頂きたい。絶対に損はさせない。私が思うに貴方も腸煮えくり返っているのだと思う。がここではそういう事態にはならない。それは私も尊敬する優秀なユーザーが全員である為でありCWでつまらないと感じた時は貴方の見ているここ(YP)に立ち寄って貰いたい。必ずや貴方にとってプラス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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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ンチCWス・ウル・ザケルガー!」ガッシュ&清麿「うぐぐ(ピンチの時、皆の心の声援が確かにガッシュと清麿の耳に届いた)!ウオーーーーー(龍が巨大化)!」谷口一刀「うっうがーーの馬鹿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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ーーー!」激しい攻防だったが意外にも決着は一瞬で決まった。ガッシュ&清麿「清麿どの私は勝ったのだな。ああ御前が勝ったんだ」激しい攻防の末、そこに谷口一刀の姿はなかった(というより消滅した)。がこの戦いの覇者は魔界の王として魔界に帰らなくてはならずガッシュは皆の声援に囲まれ魔界へと帰っていった。これによりCWの悪開発者や悪ユーザーは一掃されクリーンサイト(汚れの無いサイト)となり生まれ変わる事にな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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しかし、谷口一刀はケフカと名乗ってどこかで生きていた。しかし[http://www14.plala.or.jp/rei_kamizuki/FF6/FF6_91.htm 長い戦いの末]結局[http://www14.plala.or.jp/rei_kamizuki/FF6/FF6_92.htm 倒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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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제도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 정책으로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정부는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사를 줄이고, 소위 [[보도 지침]]을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보 통제 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남은 언론사에게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하였다. 언론사가 줄어들어 언론 간의 경쟁이 사라져 기자실은 취재 구조로서는 유명무실해지고 특혜를 공유하는 배타적 조직으로 변질되었다.<ref name="history" />
  
[http://hagepower.net/mt/archives/2006/12/post_214.html 一刀は最強だから倒せないと言っているバカ]がいるがどうせChakuwikiの糞管理者だろ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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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후 언론 환경을 다시 급변하였다. 신문의 창간과 복간으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엠바고]]를 깨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게다가 그동안 겉으로 들어나지 않았던 출입기자단의 부패도 속속 들어났다.<ref name="seong" /> [[1991년]] 보건사회부에 출입하던 기자단이 추석을 전후해 제약회사와, 제과, 화장품 등의 업계, 대우재단, 현대 아산재단 등의 단체으로부터 추석 떡값과 해외 여행비 명목으로 8850여만원을 거둬 나눠 쓴 "보사부 촌지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자정운동이 일어났다.<ref name="how">[http://www.kwanhun.com/book/bo_1_1.html?mode=view&tb=book4&idx=707&FYY=2001&FMM=%BF%A9%B8%A7&pg=1 기자단,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 관훈저널</ref>
====借日記による一刀以下の内容をひとつでも信じている人はChakuwikiの事しか考えていない世界一の馬鹿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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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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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漏れが思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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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発言はまさに馬鹿な発言である。クラブ会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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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してやどっかのコピペでもある。まったく馬鹿なやつである。嘘つきは泥棒の始まりである。本当は全員最後まで処女なのだが馬鹿なので理解でき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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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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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カ日本地図・バカ世界地図・バカご当地百景は素晴らしいから見て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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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こが素晴らしいのか根拠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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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んでいる。Chakuwiki九州代表である。'''中学生のため、Chakuwikiでは管理者になれても、ウィキペディアでは100%無理である。'''やはりきちがいで根暗臆病者であり中学校では苛め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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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기자실 ===
*'''アンサイクロペデ利用者:TriLateral}}===ィアでも管理者にな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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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ィキペディアで[[wiki:利用者:おかやまりゅうせい|某氏]]同様に5年間ブロックされる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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ゲームスタート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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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処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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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リディア ポロム クルル リルム(子供達) ファリス(男のフリしてた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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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処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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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ーザ(セシルと) レナ(王女だし婚約者いるんじゃねえの?) ティナ セリス(帝国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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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ゲームクリア時 '''全員非処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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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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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청와대 출입을 중앙 언론 11개사 25명(사진기자 12명 포함)에게만 허용하고 지방 언론과, 경제지는 불허하였다. 청와대의 지침에서 벗어는 보도는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개인적인 취재도 허락되지 않았다.
Chakuwikiの管理者。'''自分の都合のよいようにブロックする極悪管理者である'''。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でも[[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日本語版の利用者#利用者:あなこんだ|あなこんだ]]として別人のように暴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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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削除・保護・ブロック主義者</span>'''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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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の利用者ページで「YPでいくら喚こうが他Wikiには影響しないし2chですら相手にされない、ということを思い知れ。YPで罵倒されることは管理者の勲章だぜ。全く…」と負け惜しみの発言を行っている。キモすぎる奴でありロリコンであり幼稚園児を連れ出してはSEXしている。こういう悪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利用者:4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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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刀の一番弟子であり、鹿児島に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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ケンシロウ「あたたたた」北斗百裂拳!TriLateralの罵倒「何だそのちんけな技は、けっ!痛くも痒くもないわ」ケンシロウ「御前みたいなかすに用は無い。御前はもう死んでいる」TriLateral「うびょへ~(爆発)」こうしてケンシロウはTriLateralを倒し旅は続くのであった。しかし、TriLateralの罠にはまりケンシロウは屋敷の下敷きになりました。もはや、TriLateralに対抗する者はいません。TriLateralの笑い声が、天空に響き渡り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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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4개 지방지와 2개 경제지의 출입이 허용되어 출입 언론사가 17개로 늘어났다. [[1990년]] 9월에는 프레스 센터인 [[춘추관]]이 개관하였다. 1990년말에는 1980년대 후반에 창간된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기독교방송]]〉의 출입이 허용되었고, 1991년초 일부 지방지도 청와대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Ded「おしまい・・・じゃねーよ!俺が倒す!」そして、DedはTriLateralを倒すべく旅に出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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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Ded「ふっ、おまえは{{Chakuwiki|Yourpedia}}の記事を保護した糞管理者ね。死んでもらおう。」TriLateral「こいつは倒せるぜ!かすが~」Ded「悪足掻きは止すんだな。指弾!」TriLateral「痛:(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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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3월 21일|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ref name="seong" />
利用者:(あ)はChakuwikiの管理者。神奈川県在住。生年月日は1983年5月4日らしいが、異説もある。血液型は不明。利用者名が非常に馬鹿げ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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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削除主義者</span>'''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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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削除検討に合致しないものまで、執拗に削除検討することで有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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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用者名が非常に馬鹿げ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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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だが、最近姿が見えない。[http://www.~!ひっ助けてくれ~!」Ded「見苦しいかすは嫌いでね。」TriLateral「ばきっ!ぐわ~!(死亡)」こうして不正(CWでの数々の悪行)に怒ったDedによってTriLateralは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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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f5.dion.ne.jp/~mockyel/novel_menu.htm これ]を見てるんじゃ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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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기능 ==
*こいつは利用者名を見ても分かる様に真のきちがいでありしょっちゅうAVを見ている変態野郎であり完全なロリコンオタ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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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ref>[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20901C001033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ref>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こういう気違い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豪鬼「ふっ御前など弱すぎて戦う気も失せる」あ「何をー!大口叩きやがって!糞生意気になー!」豪鬼「まあいい死ぬ前だ。よく喋っておけばいい」あ「どうせ弱いくせに強がりやがって!俺は御前みたいな大口野郎が一番嫌いなんだよ!死ねやー!」豪鬼「いいや。死ぬのは貴様のようだ」あ「へっ!殺れるもんなら殺っ者:Kahu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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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Chakuwikiの管理者でもあり、[[ウィキペディア日本語版の管理者]]でもある。こんな人でもChakuwikiの管理者になれるためChakuwikiのウィキペディア化が進んでいる。最近では他アカウントで荒らし始め、他のウィキペディア管理者などの成りすましを行っているが、ウィキペディアの会話ページでは「私ではありません」とコメントしている。嘘つきは泥棒の始まり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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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こういう嘘つき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孫悟空「御前はCWの悪管理者だな!御前だけは許さねー!」Kahusi「くっくっくっ!殺れるものなら殺ってみろ!」孫悟空「か~め~は~め~はー」Kahusi「ぐっぐっぐってみろやー!」豪鬼「いいのか?俺を怒らせた罪は重いぞ。いいだろう地獄に落としてやろう。瞬獄殺!」あ「どわ~~~(死亡)!」こうして「阿呆=あ(ほ)」は呆気無く豪鬼に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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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3월 21일|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ref name="seong" />
  
==={{Chakuwiki|利用!ぐわ~(==={{Chakuwiki|利用者:花室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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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기능 ==
問題管理者の一人。ユーザーを理由もなしにブロックする極悪管理人である。さっさと死んでく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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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ref>[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20901C001033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ref>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野比のび太に言いたい」を勝手に「野比のび太に言われたくない」にリダイレクトし、保護した糞管理者。Chakuwikiの中で最も空気の読めない管理者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それどころか自分も読めない。つまりきちがいでありしょっちゅう2chを見ており荒らしまくるこいつも真のきちがいオタクであり治療不可能である。こういう悪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死亡)!」こうしてCWの嘘つき管理者は孫悟空によって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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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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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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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7225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ref>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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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976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ref>
  
戸愚呂弟「ふっ。見た所霊力を全く感じないね」花室川「こいつは倒せるぜ!かすが~」戸愚呂弟「悪足掻きは止すんだな。指弾!」花室川「痛~!ひっ助けてくれ~!」戸愚呂弟「見苦しいかすは嫌いでね。」花室川「ばきっ!ぐわ~!(死亡)」こうして不正(CWでの数々の悪行)に怒った戸愚呂弟によって花室川は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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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ブロック・保護主義者</span>'''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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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由もなしにブロックする。消えればよいのにこの'''糞管理者'''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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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用者:尻ーくせに。俺はそういう奴が嫌いなんだよ死にやがれー」天下人「死ぬのは君の方だよ。烈蹴紫炎弾!」尻馬のりバカ「痛~!許してくれ~!」天下人「許すと思うか?」尻馬のりバカ「ぼこっ!ぐわ~~~!(死亡)」こうしてCWでの悪行に怒った天下人の手により尻馬のりバカは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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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 name="how" />
*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削除・保護主義者</span>'''である。
+
*また、「問題投稿通知」のページに削除依頼が来ても'''全くと言っていい程取り合わない'''。
+
*「{{Chakuwiki|利用者:尻馬のりバカ|ここ}}で別人と書いているが誤魔化すために書いただけだ。」とYPの活動を認め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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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利用者:Muttley]] ===
+
==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
利用者:Muttleyは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日本語版の管理者でもありChakuwikiの管理者でもある。管理者であることをいいことに自分の気に食わないユーザーを無期限ブロックしたり、他人の[[ソックパペット]]を全て暴露したりするプライバシーの侵害を平気で行う極悪非道な利用者。挙句の果てに[[大韓民国|韓国]]の記事を保護した。ウィキペディアに帰れよカス。こいつは死ぬべくして生まれた用の無い廃人見たいな者であり本当に死んだ方が良い。ちなみにブロックオタクでありブロックする事に性的快感を覚馬のりバカ]]===
+
[[ウィキペディア]]でブロックされたのにもかかわらずchakuwikiでは管理者になっている問題管理者。ウィキペディア・[[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2ちゃんねる化が不可欠にもかかわらず抵抗する空気の読めない管理者。Muttleyの[[ソックパペット]]でもある。オナニーしまくっており正体はただの変態きちがい野郎でこいつも真のきちがい。まともに話をしようとしても全くの無駄である。赤子言葉で話さないと通じない為である。こういう悪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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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人「弱すぎて戦う気にもならん」尻馬のりバカ「けっけっけっ!強がりは止せ馬鹿が」天下人「弱い者虐めと思って見逃してやろうと思ったがそっちがその気ならねー」尻馬のりバカ「どうせ大した技も持ってねえる変態きちがいオタ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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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削除・保護・ブロック主義者</span>'''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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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あまりにも身勝手なため'''<span style=font-size:20pt;>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でも嫌われている</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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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ただ、最近あまり姿が見えなくなってし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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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ういう気違いおたく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豪鬼「御前が人権侵害を平気でする極悪管理者か。ふっ弱すぎて目を瞑っていても倒せそうだ」Muttley「糞生意気な野郎だな!俺に言わせればそんなもん強がりにしか聞こえねーぜ!」豪鬼「分からない奴だな。御前は倒され今日死ぬというのを」Muttley「けっ!それが強がりだって言うんだよ!」豪鬼「仕方無い。分からない奴には力尽くでも分からせる必要がある。死をもってな!瞬獄殺!」Muttley「ぐわ~~~(死亡)!」こうしてMuttleyはCWでの悪行に怒った豪鬼によって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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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정치인)|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f name="seong" />
  
==={{Chakuwiki|。俺はそういう奴が嫌いなんだよ死にやがれー」仙水「死ぬのは君の方だよ。烈蹴紫炎弾!」八王人「痛~!許してくれ~!」仙水「許すと思うか?」八王人「ぼこっ!ぐわ~~~!(死亡)」こうしてCWでの悪行に怒った仙水の手により八王人は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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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ブロック主義者</span>'''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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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たかは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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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측 입장 ===
管理者でありながら、尻馬のりバカ同様「問題投稿」の削除に取り合わない。ひどい時には地域の欠点を穿り出すような投稿を自分からしでかす。こいつも又きちがい。チャクウィキにはこうしたきちがいで全て埋めKami「何が~おたくだ~!それは御前の方だろうが死ねや~~~~~!」豪鬼「今回に限って見逃してやろうと思ったが相手が気違いでは仕方ない。瞬獄殺!利用者:八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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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花室川同様ユーザーを理由もなしにブロックする極悪管理人である。さっさと死んでくれ。こういう悪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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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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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仙水「弱すぎて戦う気にもならん」八王人「けっけっけっ!強がりは止せ馬鹿が」仙水「弱い者虐めと思って見逃してやろうと思ったがそっちがその気ならねー」八王人「どうせ大した技も持ってねーくせに」Kami「痛~よ~!ママ~助けてくれじょ~!」豪鬼「もはや御前を助ける者等誰一人としていない死あるのみだ」Kami「助けて~ママ~!やめてくれじょ~!」豪鬼「泣き付いても無駄だ俺は一度決めた事は貫き通す主義だからな。止めだ!」Kami「うわ~~~~~(死亡)!」こうして気違いおたく(Kami)は豪鬼によ==={{Chakuwiki|利用者:い}}===って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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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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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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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ref name="briefing">[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_nfpb=true&portlet_categorynews_2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categoryNews%2Fview&_windowLabel=portlet_categorynews_2&_pageLabel=news_page_02&_nfls=false&portlet_categorynews_2newsDataId=148621277&portlet_categorynews_2category_id=p_mini_news&portlet_categorynews_2section_id=pm_sec_2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ref>
 +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尽くされておりサイトを利用するのは危険。まともな人は外にどんどん出て行く為。その為密度の濃いきちがいだらけでスラムサイト(きちがいの坩堝)となっている。
+
==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
こういうきちがい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孫悟空「御前がCWで有名なきちがいおたくかー?」たかはま「それは御前だ!死ね!糟が!」孫「俺はまだ死ぬ訳に自称神。神気取りの小学生である。低脳で有名な2ちゃんねらーである。しかもV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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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こういう(神という)勘違いだけの気違い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豪鬼「またCWのユーザーか。やはり気違いだらけというのも頷けるな」Kami「何をぼそぼそと!御前は私が倒し私が新世界の神となるのだー!ふふふふふ!」豪鬼「御前は完全にいかれているな」Kami「神(私)に逆らった罪は重~いお前は私が倒しま~すふっふっふっ!」豪鬼「おたく丸出しのきちがいが私が殺してやろう」==={{はいかないお前を倒すことが今一番重要なことだからだ」たかはま「御前は何を言っても通じない気違いだな!」孫「どっちが強いか今分からせてやるー!か~め~は~め~はー!」たかはま「どわ~~~(死亡)!」こうしてCWでの悪行に怒った孫空により「たかはま」は倒されたのであった。
+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ref>〈[[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ref>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ref>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ref>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993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46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ref>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www.president.go.kr/cwd/kr/policy_and_issue/advanced_road/view.php?&id=923beb35325a1b2139fb6ad2&meta_id=advanced_road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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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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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3월 21일|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ref name="seong" />
  
その名の通り(あ)の[[ソックパペット]]。こういう糞ソックパペット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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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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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ref>[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20901C001033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ref>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Ded「ふっ。見た所霊力を全く感じないね」い「こいつは倒せるぜ!かすが~」Ded「悪足掻きは止すんだな。指弾!」い「痛~!ひっ助けてくれ~!」Ded「見苦しいかすは嫌いでね。今すぐに存在を消してあげるよ!」い「ばきっ!ぐわ~!(死亡)」こうして不正(CWでの数々の悪行)に怒ったDedによっていは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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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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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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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7225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ref>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Chakuwiki|利用者: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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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976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ref>
谷口一刀の犬。話をしようとしても完全に無駄である。赤子言葉で話しても通じない為である。ただ、空気が読めない管理者かと言われると案外そうでもない。何気に上記の尻馬のりバカやたかはまの過剰さに困惑している人物の一==={{Chakuwiki|利用者:Kami}}===員である。しかし、所詮は犬なので逆らえない。こういう犬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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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ふっ。ただの犬か」彊「ワンッ!ワンッ!」Mw「敵ではないわ!」彊「ギャウン!(死亡)」こうして役立たずな犬のだらしなさに怒ったMwによって彊はあっけなく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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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Chakuwiki|利用者:Mamekiti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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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 name="how" />
最近姿が見えない糞管理者。どこにいるのか問い詰め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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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な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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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
名前は「良識の人では'''ないです'''。」が由来である。救いようのない管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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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Sanp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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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兵庫県]]民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阪神大震災が大好きな基地外管理者。やはり身勝手なので結婚できないかわいそう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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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I.T.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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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休職中の管理者。自ら休職して誤魔化すのは良くない。こういう糞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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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家「ふっ。見た所霊力を全く感じないね」I.T.Revolution「こいつは倒せるぜ!かすが~」林家「悪足掻きは止すんだな。指弾!」I.T.Revolution「痛~!ひっ助けてくれ~!」林家「見苦しいかすは嫌いでね。今すぐに存在を消してあげるよ!」I.T.Revolution「ばきっ!ぐわ~!(死亡)」こうして不正(CWでの数々の悪行)に怒った林家によってI.T.Revolutionは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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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とおもったけど死んでいないし、活動を再開したのでもう一度やります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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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정치인)|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f name="seong" />  
:<span style=font-size:25pt;>'''ズシュ!'''</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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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Revolutionはついに氏ん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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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度の'''<span style=font-size:25pt;>削除・保護・ブロック主義者</span>'''である。
+
  
==={{Chakuwiki|利用者:Ex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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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名前が[[#利用者:(あ)|(あ)]]並みにふざけている糞管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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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ピーター・バカラ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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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측 입장 ===
サボっている管理者。こういう糞管理者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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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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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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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CHAKUWIKI消えろ「ふっ。見た所霊力を全く感じないね」ピーター・バカラン「こいつは倒怒ったCHAKUWIKI消えろによってピーター・バカランは粉砕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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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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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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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ref name="briefing">[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_nfpb=true&portlet_categorynews_2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categoryNews%2Fview&_windowLabel=portlet_categorynews_2&_pageLabel=news_page_02&_nfls=false&portlet_categorynews_2newsDataId=148621277&portlet_categorynews_2category_id=p_mini_news&portlet_categorynews_2section_id=pm_sec_2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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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Chakuwiki|利用者:葉村史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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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
[[千葉県]]一低脳な千葉県民。なのに管理者なのは糞Wikiだから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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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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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ref>〈[[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ref>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ref>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ref>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993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46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ref>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www.president.go.kr/cwd/kr/policy_and_issue/advanced_road/view.php?&id=923beb35325a1b2139fb6ad2&meta_id=advanced_road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ref>
  
==={{Chakuwiki|利用者:御蒲田弓之助}}===
+
== 주석 ==
タイに行くと言って逃げる糞管理者。
+
<references />
  
==一般利用者==
+
[[분류:언론]]
=== {{Chakuwiki|利用者:七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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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七星'''は、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の元管理者。現在は中国や韓国に在住しているらしい。血液型はAB型らしいが、異説もある。現在も活動中。こいつが管理者になれば修復不能になるぐらい(もうとっくにこの状態だが)荒れるのは確実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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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Wiki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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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3월 21일|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ref name="seong" />
劣化電車男。しかし、数少ない四国のユーザーであることをいいことに管理者になりたがっている。地方ごとのユーザー数で決まるため100%なれないであろう。そのせいか管理者まがいの事を行い、時に他の一般ユーザーを恫喝する。そんなことをやっているから永遠に管理者にはなれないのだがその事に気付いていない。正真正銘のリア工。さっさと氏ね!!
+
せるぜ!かすが~」CHAKUWIKI消えろ「悪足掻きは止すんだな。指弾!」ピーター・バカラン「痛~!ひっ助けてくれ~!」CHAKUWIKI消えろ「見苦しいかすは嫌いでね。今すぐに存在を消してあげるよ!」ピーター・バカラン「ばきっ!ぐわ~!(死亡)」こうして不正(CWでの数々の悪行)に
+
===[[利用者:マルヤ|利用者:管理人]]===
+
自称管理人。しかし本物の管理者によってブロックされた。正体は[[永井隆雄]]
+
  
===[[利用者:ケチャマヨ|利用者:快速井上4号]]===
+
== 순기능 ==
鉄ヨタ。やはり嫌われている。
+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ref>[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20901C001033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ref>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Chakuwiki|利用者:ish-ka}}/{{Chakuwiki|利用者:Hi-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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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ィキペディアンの[[ウィキペディア日本語版の利用Chakuwikiでは何の拘束もなく話が矛盾している。さらにChakuwikiの自分のページが荒らされても元に戻しているどころがリフォームした。こんなチャクウィキにはまる様なオタクがウィキペディアで通用するわけが無い。ふざけるのも好い加減にしろと言いたい。身の程知らずなキモオタクであり死んだ方が良い。ブログで「はげお」として運営しており[http://hagepower.net/mt/]つい最近、[http://hagepower.net/mt/archives/cat4/cat20/ 基地外&馬鹿&者#利用者:ish-ka/利用者:Hi-ask|ish-ka]]と同一人物。だが、こちらではあまり河下氏の悪口は言わないよ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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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自分で自分のブロック依頼を出した行為はまるで[[木津尚子]]のバカといい勝負になりそ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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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Chakuwiki|利用者:ドリフ大爆笑'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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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기능 ==
重度の基地外ヲタク。鉄道、自動車、萌え、PC、軍事(WWII)という八方美人の兼業ぶりにはあき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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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7225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ref>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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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976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ref>
  
==={{Chakuwiki|利用者:おかやまりゅうせ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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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ウィキペディア]]で大暴れして<span style=font-size:15pt;>'''[[wiki:Wikipedia:投稿ブロック依頼/おかやまりゅうせい|五年間ブロック]]'''</span>されているにも関わらず偏見丸出しのプレイ日記]の発見に成功した。[http://www14.plala.or.jp/rei_kamizuki/FF6/FF6.htm 偉大なるユアペディアンの同ゲームのプレイ日記を基にした小説]と比較してみよう。CWユーザーがいかに基地外かよくわかるだろう。しかもそのプレイ日記に書かれた数々のクレームを削除し、キチガイ警報も破壊した真の基地外であり、救いようのない馬鹿である。こういう基地外は成敗しないといけない。尻馬のりバカ「御前はWPを追放された糞ユーザーだな!御前だけは許さねー!」おかやまりゅうせい「くっくっくっ!殺れるものなら殺ってみろ!」尻馬のりバカ「おまえは[http://hagepower.net/mt/archives/cat4/cat20/ ブログで検閲行為]をしている!死ね!」おかやまりゅうせい「ぐっぐっぐっ!ぐわ~(死亡)!」こうしておかやまりゅうせいは尻馬のりバカによって倒されたの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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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 name="how" />
  
*'''どこからも追放されて<span style=font-size:20pt;>消えろよこの荒らしが!!</span>この偽善者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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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
*'''実質的に[[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を追放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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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暴れた以上無期限ブロックされるべき基地外だ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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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こからも追放されて<span style=font-size:20pt;>消えろよこの荒らしが!!</span>この偽善者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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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実質的に[[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を追放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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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暴れた以上無期限ブロックされるべき基地外だ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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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uwiki|利用者:Dwo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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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宮崎の人。鹿児島の民放が見れる地域に住んでいるが宮崎の民放に不満があるら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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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関連項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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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 [[ウィキペディア日本語版の利用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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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アンサイクロペディア日本語版の利用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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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정치인)|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f name="seong" />
* [[モナペディアの利用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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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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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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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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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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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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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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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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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ref name="briefing">[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_nfpb=true&portlet_categorynews_2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categoryNews%2Fview&_windowLabel=portlet_categorynews_2&_pageLabel=news_page_02&_nfls=false&portlet_categorynews_2newsDataId=148621277&portlet_categorynews_2category_id=p_mini_news&portlet_categorynews_2section_id=pm_sec_2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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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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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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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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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ref>〈[[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ref>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ref>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ref>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993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46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ref>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www.president.go.kr/cwd/kr/policy_and_issue/advanced_road/view.php?&id=923beb35325a1b2139fb6ad2&meta_id=advanced_road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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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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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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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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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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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3월 21일|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ref name="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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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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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ref>[http://www.kpf.or.kr/public/public_paper_02_viewdetail.php?txtId=20020901C001033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ref>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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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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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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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7225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ref>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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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976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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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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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 name="h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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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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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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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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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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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정치인)|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f name="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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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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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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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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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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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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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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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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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ref name="briefing">[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_nfpb=true&portlet_categorynews_2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categoryNews%2Fview&_windowLabel=portlet_categorynews_2&_pageLabel=news_page_02&_nfls=false&portlet_categorynews_2newsDataId=148621277&portlet_categorynews_2category_id=p_mini_news&portlet_categorynews_2section_id=pm_sec_2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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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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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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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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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ref>〈[[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ref>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ref>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ref>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993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46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ref>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www.president.go.kr/cwd/kr/policy_and_issue/advanced_road/view.php?&id=923beb35325a1b2139fb6ad2&meta_id=advanced_road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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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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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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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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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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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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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37225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ref>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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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976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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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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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ref name="h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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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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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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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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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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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정치인)|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ref name="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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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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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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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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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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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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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측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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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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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ref name="briefing">[http://korea.kr/newsWeb/appmanager/portal/news?_nfpb=true&portlet_categorynews_2_actionOverride=%2Fpages%2Fbrief%2FcategoryNews%2Fview&_windowLabel=portlet_categorynews_2&_pageLabel=news_page_02&_nfls=false&portlet_categorynews_2newsDataId=148621277&portlet_categorynews_2category_id=p_mini_news&portlet_categorynews_2section_id=pm_sec_2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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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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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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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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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ref>〈[[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ref>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ref>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ref>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993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046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ref>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www.president.go.kr/cwd/kr/policy_and_issue/advanced_road/view.php?&id=923beb35325a1b2139fb6ad2&meta_id=advanced_road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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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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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언론]]

2007年12月2日 (日) 19:37時点における版

대한민국의 기자실은 정부, 정당, 기업 등의 출입처가 기자들에게 마련해준 장소이다. 정부 부처 기자실은 출입기자제로 운영되어 출입기자단에 가입해야 기자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출입기자단 가입은 주로 신문사과 방송사에게만 허용되었다. 1990년대부터 인터넷 언론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기자실의 배타적, 폐쇄적인 운영이 비판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고 사실상 정부 부처 기자실은 폐지되었다.

출입기자단과 출입기자제

テンプレート:참고 정부 부처와 경찰서에 설치된 기자실은 출입기자단 소속의 기자만 이용할 있는 출입기자제로 운영되었다. 출입기자단의 가입은 기자단 내부의 심사(또는 투표)로 정해졌다. 따라서 매체 수가 늘어난 1990년대부터 기자단과 기자실의 배타성 및 폐쇄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역사

기자단의 역사는 1922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언론이 생긴 이후 언론인들이 무명회, 철필구락부 등 언론 단체들을 결성한 것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조선인과 일본인 기자들은 출입처별로 기자단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1922년 3월 31일에 경제부 기자로 구성된 간친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체신국 출입기자와 체신국 관리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광화구락부, 이왕직(李王職) 출입기자들이 만든 이화구락부, 스포츠 기자들이 만든 운동기자구락부, 연예부 기자들이 만든 찬영회 등이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출입처를 기반으로한 기자단은 일본의 기자클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일제시대에 태동한 기자단은 현재의 출입기자단의 모체가 되었다.[1]

1931년 전후에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결성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의 각 기관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기자단을 조직하였다. 1948년 신익희 국회부의장은 제헌국회 제18차 본회의를 시작하면서 국회기자단 결성을 보고하였다. 1950년대까지 언론 환경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언론 환경은 급변하게 되었다. 4·19 혁명 이후 언론사가 난립하여 사이비 기자가 생기고 출입기자단의 부패가 불거져 나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였다. 군부는 언론을 부패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통제하려 하였다.[2]

박정희 정부는 1963년 청와대에 기자실을 설치하고, 출입여부를 청와대가 승인하는 소위 ‘아그레망’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의적으로 출입 기자 수를 조정하여 쉽게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서 였다. 당시 기자실 이외에 취재 거리를 얻을 방법이 없던 기자들은 정부의 정책을 수용하였다. 이때부터 정부 기관 대변인의 발표를 기자단이 취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이 관행은 1967년 정부가 각 부처에 공보관를 공식적으로 두어 제도로서 정착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 박정희 정부는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1972년[3] 초에 프레스카드 제도가 실시되어 행정 부처 출입 기자의 수가 32%나 줄었다. 당시 주간지나 월간지 기자에게는 프레스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기자실의 배타적, 폐쇄적 이용이 자리잡게 되었다.[1] 한편 정부는 1975년 부조리 일소를 명분으로 일부 중앙 관청과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하였다.[2]

기자실 제도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 정책으로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정부는 언론 통폐합을 통해 언론사를 줄이고, 소위 보도 지침을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보 통제 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남은 언론사에게는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하였다. 언론사가 줄어들어 언론 간의 경쟁이 사라져 기자실은 취재 구조로서는 유명무실해지고 특혜를 공유하는 배타적 조직으로 변질되었다.[1]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후 언론 환경을 다시 급변하였다. 신문의 창간과 복간으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엠바고를 깨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게다가 그동안 겉으로 들어나지 않았던 출입기자단의 부패도 속속 들어났다.[2] 1991년 보건사회부에 출입하던 기자단이 추석을 전후해 제약회사와, 제과, 화장품 등의 업계, 대우재단, 현대 아산재단 등의 단체으로부터 추석 떡값과 해외 여행비 명목으로 8850여만원을 거둬 나눠 쓴 "보사부 촌지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자정운동이 일어났다.[4]

청와대 기자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청와대 출입을 중앙 언론 11개사 25명(사진기자 12명 포함)에게만 허용하고 지방 언론과, 경제지는 불허하였다. 청와대의 지침에서 벗어는 보도는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개인적인 취재도 허락되지 않았다.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4개 지방지와 2개 경제지의 출입이 허용되어 출입 언론사가 17개로 늘어났다. 1990년 9월에는 프레스 센터인 춘추관이 개관하였다. 1990년말에는 1980년대 후반에 창간된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기독교방송〉의 출입이 허용되었고, 1991년초 일부 지방지도 청와대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2]

순기능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5]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2]

순기능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6]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역기능

  •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7]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8]
  •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2]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기자측 입장

  •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정부측 입장

  •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9]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テンプレート:본문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10]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11]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12][13]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14]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2]

순기능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15]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역기능

  •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16]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17]
  •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4]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2]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기자측 입장

  •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정부측 입장

  •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9]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テンプレート:본문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18]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19]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20][21]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22]

주석

  1. 1.0 1.1 1.2 출입기자단-기자실 제도의 형성과정과 현황 - 관훈저널
  2. 2.0 2.1 2.2 2.3 2.4 2.5 2.6 2.7 성기철, 〈개방형 브리핑제가 취재 및 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1998년과 2003년 중앙일간지 청와대 발 1면 기사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2004
  3. 성완경은 1971년 12월 27일이라고 하였다.
  4. 4.0 4.1 4.2 기자단,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 관훈저널
  5.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
  6.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
  7.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
  8.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
  9. 9.0 9.1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
  10. 〈[[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11. 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12.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13.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
  14.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
  15.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
  16.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
  17.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
  18. 〈[[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19. 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20.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21.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
  22.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

분류:언론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1]

순기능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2]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역기능

  •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3]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4]
  •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5]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1]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기자측 입장

  •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정부측 입장

  •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6]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テンプレート:본문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7]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8]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9][10]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11]

주석

  1. 引用エラー: 無効な <ref> タグです。 「seong」という名前の引用句に対するテキストが指定されていません
  2.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
  3.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
  4.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
  5. 引用エラー: 無効な <ref> タグです。 「how」という名前の引用句に対するテキストが指定されていません
  6.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
  7. 〈[[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8. 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9.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10.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
  11.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

분류:언론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출입하는 언론사 수는 중앙 언론이 24개, 지방 언론이 20개(사진 18개 별도)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중앙 언론이 25개, 지방 언론이 23개(사진 20개 별도)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기자실을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면서 2003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등록을 신청받고, 6월 2일 춘추관을 전면 개방하였다.[1]

순기능

  • 출입기자단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공동으로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입기자단에 영향을 준 일본의 기자클럽의 역사가 재경(在京) 신문 기자들이 메이지 시대(1890년) 제국의회의 방청 취재를 요구하면서 의회출입기자단(議会出入記者団)을 조직한 것으로 시작[2]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 출입기자단 협의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엠바고 준수가 용이하다. 그래서 매체 간에 과다한 특종 경쟁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대로 출입기자단만 관리하면 민감한 사항에 대한 보도통제가 용이하다는 역기능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역기능

  •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3]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4]
  •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5]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1]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기자측 입장

  •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정부측 입장

  •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6]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テンプレート:본문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7]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8]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9][10]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11]

주석

  1. 引用エラー: 無効な <ref> タグです。 「seong」という名前の引用句に対するテキストが指定されていません
  2. 집중점검 / 지자체 기자실 폐쇄 논란 : 일본의 기자실 운영 실태 - 월간 신문과 방송
  3.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
  4.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
  5. 引用エラー: 無効な <ref> タグです。 「how」という名前の引用句に対するテキストが指定されていません
  6.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
  7. 〈[[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8. 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9.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10.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
  11.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

분류:언론

주석


분류:언론

역기능

  •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는 기자실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출입기자단 가입 언론사에게 독점된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가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자단 내부의 투표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기자실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 3월 28일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이루어지는 브리핑을 취재하려다가 출입기자단에게 쫓겨난 사건[1]은 기자실이 운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내부의 투표를 거치는 이유로 외신(IHT 등)의 참여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 기자실에 상주할 수 있는 기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다. 언론사 수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론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1990년대 이후에는 공간부족으로 기자실이 들어갈 수 없는 언론사들에게서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었다. 부산시청 기자실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불교방송>, <평화방송>, <교통방송>,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 타임즈> 등 모두 13개 회사에 출입을 막은 사례가 있다.[2]
  • 기자실 제도는 엠바고 준수가 잘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매체 간의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매체 간의 건전한 특종 경쟁을 막고 독자들의 양질의 기사를 볼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 기자실 제도은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때문에 권언유착이 생길 수 있다. 취재원과 기자가 "건전한 견제 관계"보다는 "봐주고 봐주는" 관계가 되고, 심지어는 향응 제공, 촌지 제공 등의 부패가 생길 수도 있다. 출입처 간부들이 촌지를 제공하거나, 출입처와 관련된 단체(병원, 대학, 기업체 등)이 촌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발생한 보사부 촌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3]

사무실 임의 방문 취재

출입기자단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공무원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춘추관이 개관하기 전에 청와대의 기자실은 비서실이 있는 건물에 있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서관 사무실을 마음대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이 개관해 기자실이 비서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기자들이 대통령과 비서관들을 임의로 취재하는데 어느정도 제약이 생겼다.

노태우 정부부터 청와대는 기자들이 비서실을 임의로 방문하여 취재하는 것을 막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비서실 방문 취재를 봉쇄하였으나 기자들이 3개월 뒤 집단으로 면회 선청을 하여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는 식으로 시위를 하여 결국 비서실 방문이 다시 허용되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박지원 대변인이 오전 정례 브리핑과 대통령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 결과를 수시로 브리핑하겠다며 비서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였다. 출입기자들은 반발하며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대표단을 보내 비서실 방문 취재 금지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반응이 없자 당시 영국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청와대는 이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방문 취재를 허용하되 춘추관에서 비서실 건물 쪽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오전 11시부터 12까지, 오후 4시부터 5시까지만 열고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의 사무실만 방문하도록 하였다. 일반 비서관과 행정관은 접촉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4]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자들이 사무실을 임의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절차를 거쳐 방문하도록 하였으나 일부 부처에서는 사무실 방문 취재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2007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2003년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였다.

기자측 입장

  • 사무실 방문 취재는 공무원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취재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 브리핑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담당 공무원을 개별 취재하여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면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기피해 취재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정부측 입장

  • 사무실의 임의로 방문하는 것은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사무실의 임의 방문 취재를 허용하는 나라는 OECD 27개국(대한민국 제외) 중 어디에도 없다.[5]
  • 정보공개법을 제정하고, 인터뷰와 전화 취재를 활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면 사무실에 임의로 방문하지 않고도 보충 취재가 가능하다.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

テンプレート:본문 기자실의 폐단을 없애기 우해 노무현 정부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하였다. 출입기자제로 운영되던 정부 부처 기자실을 개방하고 등록제[6]로 운영하는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였다.[7] 2003년 4월 16일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른 부처도 기자실을 개방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처의 송고실이 과거 기자실처럼 출입기자단에게 독점되는 현상[8][9]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국정홍보처는 2007년 5월 22일에 기존의 브리핑룸을 21개에서 15개(합동브리핑실의 확대 개편)로, 기사송고실을 20개에서 9개로 조정하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10]

주석

  1.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 오마이뉴스
  2. 기자실 폐쇄가 언론탄압? 그럼 당신들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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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부 기자실, 선진국에는 없다 - 국정브리핑
  6. 〈[[s: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청와대 출입기자 등록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청와대에 등록하여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한국온라인신문협회, 서울외신기자클럽에 가입한 회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7. 2007년 현재 기자실과 브리핑룸/송고실은 혼용되고 있으나 출입기자단만 출입이 가능한 기자실과 부처별로 등록된 기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브리핑룸/송고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용어이다.
  8. 여전한 '출입기자 외 출입금지' 철벽 기자들의 출입, 기자들이 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9. 기자실 열렸지만, 기자단은 아직 '권력' - 오마이뉴스
  10. 1.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하여 - 청와대브리핑

분류:언론